[이 아침에] 한인 교회 분쟁, 해법은 사랑
한인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낯선 환경 속에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부딪히기 쉬운 이들에게 교회는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한국과 달리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할 기회가 적은 이민 사회에서 사람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많은 이들이 이민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고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교회를 찾는다. 때로는 이러한 만남이 신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별한 연고가 없는 이민자들은 대개 집에서 가까운, 인지도가 높고 규모가 큰 한인 교회를 찾게 된다. 한번 정착한 교회는 익숙함과 정 때문에 이사를 가더라도 쉽게 옮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한인타운의 유서 깊은 대형 교회를 수십 년째 다니고 있다. 오랜 시간 같은 교회를 다니는 동안, 나는 안타깝게도 교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신도 간의 의견 다툼, 신도와 성직자 간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일부는 교회를 떠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분열의 중심에는 대개 교회 재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인타운의 상당수 대형 교회들이 크고 작은 갈등을 안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교인들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교회가 갈라서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며, 그 이면에는 어김없이 금전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이러한 갈등은 신문이나 뉴스에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수많은 교회들이 내부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교회가 분열될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오랜 시간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온 교인들이 서로 등을 지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구역 안에서 교제하고 식사하며 믿음의 공동했다. 이러한 분열의 중심에는 대개 교회 재정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인타운의 상당수 대형 교회들이 크고 작은 갈등을 안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교인들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교회가 갈라서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며, 그 이면에는 어김없이 금전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심지어 이러한 갈등이 신문이나 뉴스에 보도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수많은 교회들이 내부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교회가 분열될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오랜 시간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온 교인들이 서로 등을 지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구역 안에서 교제하고 식사하며 믿음의 공동겪지 않는 교회는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기쁨을 함께했던, 슬픔에 함께 눈물 흘렸던 소중한 이들과 단절되지 않고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는 없을까. 교회가 추구하는 사랑 안에서 함께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초대 교회였던 고린도 교회 역시 심각한 분쟁을 겪었다. 사도 바울은 당시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 “여러분은 모두 같은 말을 하며,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없도록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으로 뭉치십시오”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또한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라는 귀한 가르침을 남겼다. 교회의 분열은 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긴다. 오랜 시간 정을 나누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갑작스럽게 헤어져야 하는 아픔과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아이들이 슬픔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일 것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교회 내의 다툼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서로 마주 앉아 사랑의 공동체로서 진솔하게 대화하고 화해한다면, 그 사랑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정호 / 수필가이 아침에 한인 교회 한인 교회 교회 재정 고린도 교회